일상,생각하기/일상, 잡생각

끝이 없다.

쥴리T 2021. 3. 16. 2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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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의 기쁨도 잠시..

 

8주..  너무 심한 입덧에

입덧만 좀 가라앉으면.. 토하지만 않으면..

소원이 없겠다.

 

 

12주.. 안정기에 들어서야할 타이밍에 태아의 목두깨가 정상보다 두꺼워서 염색체 검사를 했다.

제발 정상이기만 했으면... 정상이기만 하면..

소원이 없겠다.

 

 

출산.. 새벽부터 유도분만을 하는데 당일 결국 실패하고 다음날을 기약하는데 갑자기 심장이 멎은 아기..

응급수술.. 살아만 주면.. 살아서 태어나기만 해주면...

소원이 없겠다..

 

 

모유수유.. 아기도 나도 열심히 노력하지만 결국 젖몸살이 왔다.

도려내는 것처럼 아프다. 출산의 고통만큼 아프다.

젖몸살만 나으면..

소원이 없겠다..

 

 

산후조리.. 임신말기에 자궁에 눌린 오른쪽 다리 신경이 돌아오지 않아서 여전히 쩔뚝거리면서 걷는다.

다리만 괜찮아지면.. 걷는 것만 괜찮아지면..

소원이 없겠다..

 

 

밤에도 3시간에 한번씩 깨서 수유를 해야하는 아기..

연속해서 3시간 이상을 잘 수가 없다.

밤에 5시간이라도 푹 잘 수만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이유식을 시작한 아기.. 뭘 해줘도 잘 안먹서 속상하다.

뭘 해줘야 잘 먹을까.

뭐든지 푹푹 잘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29개월에 어린이집에 간 아이.. 어린이집에 가기전에 기저귀를 뗄려고 했는데 잘 안됐다.

기저귀 떼는 훈련을 시키는데 도통 잘 못한다.

기저귀만 떼면..

소원이 없겠다.

 

 

밥을 잘 안먹는 아이. 매일매일 삼시세끼가 전쟁이다.

지친다. 어떤 맛있는 걸 해줘도 잘 안먹는다. 밖에 데리고나가거나 여행을 가면 밥 때마다 너무 힘들다.

밥만 잘 먹으면..

소원이 없겠다..

 

 

유치원에 간 아이.. 직장다니는 엄마때문에 종일반까지 있어야 한다.

첫날부터 너무너무 울어서 눈과 얼굴이 부었다. 며칠째 계속 유치원에 가기 싫어하고 

퇴근하고 데리러가면 울고난 얼굴을 보게된다.

유치원에 잘 적응하면..

소원이 없겠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아이..

다른 아이들처럼 아침에 데려다줄 수도 없고, 데리러 갈 수도 없는 엄마는 

씩씩하게 잘 해내는 아들과는 다르게 늘 걱정되고 안쓰럽고 힘들다.

아들이 학교와 공부방, 학원에 잘 적응하고 학교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면..

소원이 없겠다..

 

 

초등학교 2학년.. 이제 고작 9살 밖에 안된 아이가 자다가 경련을 했다.

휴가를 내고 응급실로 데려가 뇌파검사를 받았다.

문제가 없는 것도,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란다. 6개월 지켜보다가 이상이 있으면 다시 오란다.

아이에게 너무 스트레스를 주었던건가.. 학교를 제외한 모든걸 다 쉬게하고 

편안하게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물심양면 노력했다.

6개월 동안 아무 이상이 없으면..

소원이 없겠다..

 

 

초등학교 4학년.. 2년간 아무 문제 없다가

친정식구들을 만나고 오는 차안에서 잠든 아이가 또 경련을 했다.

어짜피 병원에 가도 지켜보자는 말만 할꺼 같다며 남편은 바로 병원에 가지말고 기다려보자고 한다.

제발.. 제발 아무일이 아니길.. 제발 괜찮길...

제발 아무일이 아니었으면..

소원이 없겠다.

 

 

다시 3달 후.. 새벽에 출근준비하는 중에 자고 있던 아이가 또 경련을 했다.

이번엔 안되겠다 싶어서 결국 응급실로 향했다.

뇌전증일 수 있다는 마음의 준비를 하고 하루종일 서울대 병원 응급실에서 기다리며

뇌파검사를 하고 기다리고 또 기다려 MRI를 찍었다.

뇌파검사에서는 2년 전처럼 또 판독하기 애매한 상황이었으나, MRI에서 뇌에 꽤 큰사이즈의 혈관종이 발견되었다.

당장 입원해서 수술을 해야한단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느낌이 안좋아서 응급실로 달려온 언니가 

차라리 수술하면 깨끗해져서 더 나을 수 있을꺼라 위로해준다.

수술헤서 괜찮아진다면..

소원이 없겠다..

 

 

바로 입원을 하고 일주일 후,, 하필 아이의 생일날 뇌수술을 했다.

머리를 빡빡밀고 수술실에 들어가는 아이를 보며, 눈물을 꾹참고

잠깐 자고 일어나면 되~ 별거아니야!! 라며 용기를 주었다.

수술만 잘되면..

소원이 없겠다..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고, 후유증만 없으면 된다.

뇌전증 약은 2주만 먹고 다시 뇌파검사를 찍었는데 안먹어도 되겠단다.

수술후 찍은 MRI에서도 수술부위에 다시 출혈이 생기지도 않고 잘 아물고 있는거 같단다. 

후유증 없이 깨끗하게 완치된다면..

다시 건강해진다면..

소원이 없겠다..

 

 

다시 학교생활을 정상적으로 잘 하고 있다.

이제 수술하며 회복하는 과정에서 떨어진 학습을 만회하는 것이 필요하다.

과외를 시작했다. 조금씩 성적도 회복하고 정상적인 생활로 돌아왔다.

이제 학교에서 성적으로도 두각을 나타내면 좋겠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점점 과외받는 태도도 안좋아지고,

고집이 쎄지며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반항을 하기도 한다.

사춘기가 오고 있는 것인가.

사춘기가 무난하게 지나가면..

소원이 없겠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학교생활을 성실하게 하며, 교육청 미술영재원 활동도 잘 하는 아이는

점점 전형적인 사춘기 아이들 처럼 

부모를 대하는 태도, 말투, 행동이 점점 마음에 안든다.

결국 아빠와 심한 갈등을 겪고, 

남편도 아이도 자존심을 세우며 달랑 셋뿐인 가족은 일주일 이상 냉전이다.

중간에서 내가 조율하는 것도 힘에 부친다.

아들과 아빠의 관계가 개선되면..

소원이 없겠다...

 

 

중학생이라 방학때는 대치동에 학원특강을 보내게 되었는데

대치동 학원스타일이 너무나 버거운 아이는 자꾸 거부한다.

그동네 다른 아이들처럼

자신의 미래를 위해 순응하며 성실하게 학원 숙제와 테스트에 임한다면

소원이 없겠다..

 

 
손재주있고, 그림을 잘그리는 아이는 중3을 앞둔 2월에
예고준비를 해보겠다고 결단을 한다.
학원에서도 가능성이 보인다는 얘기도 하고,
뭔가 의지도 느껴진다.
좀 늦은감이 있지만 시작하보기로 한다.
그러나 몇년씩 준비한 아이들 사이에서
쫒아가기가 쉽지않다.
본인이 하겠다고 했으니 하긴하는데 짜증이 늘어가고 힘들어한다.
나중에 어찌되건 기왕하기로 한거 최선을 다해주면
소원이 없겠다..



유례없는 코로나19로 개학이 연기되고,
모든 학원도 보내기가 불안하다.
미술학원 스케줄때문에 공부학원도 전부 올스탑했는데, 미술학원도 코로나 여파로 휴원이다.
얼른 학교가고, 학원가면
소원이 없겠다..



예고입시는 중3학년 1학기 내신성적까지 반영되는데
기말고사를 혼자서 스스로 준비하던 아들은
스트레스가 과했는지
방에서 나오다가 내가 보는 앞에서 실신했다.
금새 깨어나긴 했는데 너무 걱정된다.
작년에 찍었어야 했던 수술후 마지막으로 찍어보자던 뇌MRI를 안찍은게 찝찝하다.
우리 사정을 아는 주변에서는
얼른 병원가서 제대로 검사를 받아보라는데
불안하고 무서워서 더 병원에가기가 두렵다.
성장기에 단순 스트레스로 별일 아닌거라면
소원이 없겠다..



예고입시가 다가오니 아이도, 나도,
예민의 끝판왕이다.
코로나도 너무 걱정된다. 걸려도 안되고 자가격리 되도 안된다.
물론, 나는 최선을 다해 아이에게 맞춰주고 참는다.
어서 빨리 입시가 끝나면
소원이 없겠다..



떨리는 마음으로 입시를 끝냈다.
속전속결 일주일 만에 결과가 나온다는건 좋은거 같다.
실기시험날, 김치국이지만 합격에 대비해 학교주변 부동산들까지 알아봤다.
붙어도 걱정이긴하지만
아이도 간절히 원하고 있으니
꼭 합격하면
소원이 없겠다..



예고 입시는 안타깝게도 불합격이다.
너무 슬프다. 하지만 차라리 잘됐다는 생각도 든다.
아이는 이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는듯 보인다.
그러나 괜찮은 척 연기한거란다.
이 아이가 태어난 후 처음으로
그렇게 대성통곡하는걸 본다.
폭풍눈물을 흘리며 엉엉 소리내서 우는 데
내 가슴이 찢어진다.
지혜롭게 이 위기를 넘기고 아픔을 극복할 수 있다면
소원이 없겠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 모든 것들은 아무것도 아니네...?

 

되돌아보면 결국 다 지나가는 것들인데

지금의 어려움도 나중에 나중에 되돌아봤을 때 

아무것도 아니었네... 라고 말할 수 있겠지....

 

다..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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