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각하기/기억조각

예능 프로그램의 나비효과

쥴리T 2021. 1. 14.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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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니까 되게 나이든 사람 같지만...)

집에 TV가 없다고 한다.

 

주로 유튜브를 보거나 컴퓨터로 보고싶은 TV프로그램을 다시보기 한다고 한다.

 

 

우리집에도 TV가 없다.
사실

TV라는 기계가 없을 뿐이지 

프로젝터와 연결해서 TV를 본다. 

 

 

난 20대 초반.. 21살때부터 자취를 하면서

집에 있을때는 잠자는 시간만 빼고

습관적으로 TV를 항상 틀어두었다.

보든, 안보든, 듣든, 안듣든...

 

그것은 나의 어떤 무의식속의 불안감을 해소하는 백색소음 같은 것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는

 

멍하게 TV를 보고 앉아있거나 보지도 않는 TV를 틀어두는 일을

아주 싫어하는 남편과 

자주 다투었다.

 

남편에게 TV는 유익한 정보를 주는 프로그램이 아니면

전부 쓸데없는 거라서

그걸 보는 건 매우 멍청한 짓이라고 생각했던거 같다.

특히

스토리가 있는 드라마 보다 예능 프로그램을 더 싫어했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웃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참 이해가 안된다고 했다.

 

예능에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나는

연예인들의 사생활 (물론 연출된 부분이 많겠지만)을 보며 

공감도 하고 위로도 받는 것이 재미있었다.

하지만

남편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했다. 

남이 먹고 있는걸 왜 보는지, 남이 사는 걸 왜 궁금해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단다.

 

그러나 나의 예능프로그램(주로 리얼리티 프로그램) 사랑은 꾸준했고

정말 시청율 1등을 달리는 드라마보다 예능프로그램을 더 좋아했다. 재미있어했다.

 

직장을 다니고 아이를 키우다보면

온전히 TV프로그램을 집중해서 보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기 때문에

나이가 들어가면서 이제는 남편이 굳이 그 부분에 대해 터치하지 않았다.

 

이 소중한? 예능프로그램의 순기능? 나비효과 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고 한다.

 

 

 

**

 

 

 

3년전 일이다.

 

아들이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학교에서 실시하는 건강검진을 했다.

요즘엔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은 병원에 위탁하여 모두가 건강검진을 받는다.

어른들이 받는 그런 건강검진과 똑같다.

 

5월 말, 연휴였다.

아들이 건강검진을 받았던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폐 엑스레이에서 좀 이상한 부분이 발견되었는데

결핵소견이 있으니 재검을 받으러 오라는 것이다.

 

 

결핵?????

 

 

 

결핵은 국가에서 관리하는 전염병이다.

 

학생에게 결핵이 발생하면

일단 그 학생이 다니는 학교의 전 교직원과 학생이 결핵검사를 받아야하고,

결핵에 걸린 학생은 일정기간 격리 치료를 받고 국가에서 제공하는 약물치료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한다.

 

요즘은 결핵에 걸렸다고 해서 쉽게 죽거나, 쉽게 전염되진 않는다.

아기때 BCG예방접종을 받기 때문에 

쉽게 걸리지도 않고, 쉽게 전염되지도 않고, 걸렸다 하더라도 쉽게 중증으로 발전되지도 않는다.

하지만.

단체생활을 하는 학생은 결핵이 발병하면

그 학교 전체가 

한마디로 아주 골치아파진다.

 

이 과정을 너무 잘 알고 있는 나는

병원에서 결핵소견 의견을 받자 마자

 

큰일났다 싶었다.

 

기침이나 미열같은 결핵의 증상은 전혀 1도 없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건강검진받았던 병원보다 더 빨리 정밀검사를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서울대병원 응급실로 갔다.

 

연휴라서 응급실에 가면 빨리 검사를 받을 수 있을꺼 같아서다.

 

 

진짜 결핵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에 정말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았던거 같다.

 

 

 

그러나 연휴의 응급실은

응급한 치료가 아닌 결핵검사를 빠르게 해주진 않았다.

 

 

결핵의심이었기 때문에

응급실 안에 있는 격리실에 들어가서 대기하며 혹시 모를 감염위험으로 

격리실에 들어오는 의료진은 마스크와 1회용 가운을 추가로 입고 드나들었고

보호자인 나도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지금은 1년째 코로나 시국이라ㅠㅠ 마스크 쓰고 있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지만

그당시에는

세상 불편했다.

 

만약 아들이 결핵으로 확진되면

나도 검사하고

내가 일하는 곳의 직원들도 전부다 검사해야한다.

 

생각해보면 지금의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을때와 비슷한 프로토콜이다.

 

 

 

지루한 기다림은 계속되었고

 

너무나 멀쩡한 아들은

이동식 엑스레이장비를 가지고 격리실에서 한번더 엑스레이를 찍었다.

 

 

결핵검사 중에

팔뚝에 피부반응을 검사하는 "투베르쿨린 검사" 를 했지만 

이건 2,3일 후에 피부반응 부위의 사이즈를 확인하는 것이니 당일 결과가 안나올 것이고

 

사실 응급실에서 바로 결과가 나오게 하는 것은

엑스레이 판독밖에 없는데

 

다시 찍은 엑스레이 판독 결과에서도 

 

폐쪽에 약간 흔적이 보여서 애매한 상황이라서 

담당 교수님이 보셔야하는데 휴일에다 밤이라 교수님은 안계셔서 정확한 판독을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귀가시켜주지도 않았다.

 

 

 

이불도 없는 작은 격리실에

아들은 더 작은 침대에 누워서 내 외투를 덮고 잠이들었고

나는 걱정반, 짜증반 으로 불편한 의자에 앉아 밤을 꼴딱샜다.

 

너무 불편한 그 침대에서 아들은 잠을 푹 잘 잤을리 없고

자다깨다를 반복하며

의료진의 판단을 기다리는데

정말 아침이 될때까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격리실에 갇혀있었다.

 

핸드폰 충전기도 챙겨가지 않아서 핸드폰으로 뭘 편하게 하기도 어려웠다.

 

다행히 격리실에는 작은 TV가 있었는데

 

처음엔 그게 의료장비인줄 알고 사용하지 않다가

너무 지루한 나머지 이것저것 만져보다보니 TV라는 걸 알게되고

 

그때부턴 좀 수월하게 시간을 보냈다.

그때가 새벽5시반이 었다는 점이 좀 아쉽지만. 하하하

 

 

그때... 봤던 프로그램이

김종국이 나오던 '나혼자 산다' 였다.

 

 

내가 종종 보던 예능이었는데

다행히 못봤던 부분이라 재밌게 봤다.

 

운동중독자인 근육질 김종국이 고도비만인 매니저를 운동시키는 내용이었다.

김종국 집이 있는 아파트 지하 3층에서 맨 꼭대기 23층까지

몇번이고 오르는 거였다.

지하 3층까지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서 23층까지 걸어올라가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지하3층으로 내려가서 다시 계단을 올라가고..

 

쌩쌩한 김종국과는 달리 기진맥진 쓰러질꺼 같은 매니저의 모습을 보면서

웃기고 재밌기도 했지만...

 

 

아!!! 나도 저걸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도 안들고, 현관문만 열고나가면 될 정도로 가깝고.
날씨 핑계를 될 일도 없는
게으른 나에게 딱 맞는 운동이었다.

 

병원에 있으니 더 건강에 대한 생각이 강했던 걸까...

 

나도 정말 운동을 좀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우리집이 16층이니까

나도 지하1층에서 16층까지 한번 계단으로 올라가보자.. 하고 

딱 100일만 해보자... 하고 

 

 

결핵의심이었던 아들에 대해서 결론부터 말하자면

결국 밤을 꼴딱새고 아무것도 못하고 늦은 오후에 응급실에서 탈출?했고

며칠 후 객담검사를 위해 병원에 가서
다시 찍은 엑스레이는 왠일로 깨끗했고

아들은 결핵이 아니었다.

기침 감기 끝에 잠시 폐에 흔적이 남은 것일 뿐 결핵은 아니었던 것이다.

 

천만 다행이었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스트레스에 대처하면서도 나의 건강을 위해

김종국의 방법대로 

지하1층~16층까지 계단오르기를 매일 했다.

 

하루에 한번씩 딱 100일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응급실에서 퇴원한 날부터 바로 시작했다.

 

일부러 지인들 단톡방에 나의 계단오르기 100일 프로젝트를 알리고 며칠차인지 카운트하는 것을 매일 올렸다.

인스타그램에 일부러 게시물을 올리면서 계단오르기 며칠차 태그를 달았다.

 

 

퇴근하면서 지하주차장에서 걸어올라오기도 했고,

구두를 신은 날은 퇴근하자마자 신발을 갈아신고 바로 내려가서 올라왔고,

너무 피곤한 날은 저녁까지 먹은 후 일부러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핑계를 만들어서 내려가고 걸어올라왔다.

 

그렇게 꾸준히 하루도 빠짐없이 100일을 했다.

 

처음에는 정말 숨이차서 죽을꺼 같거나

허벅지가 터질꺼 같거나

죽을꺼 같은데 아직 9층이야.. 라거나

12층 쯤에서 도저히 안되겠는데 지금이라도 엘베탈까... 라거나

항상 10층 정도에서 고비가 많았지만

 

지하 1층부터 16층까지 걸어올라오는데 몇분이나 걸릴까 시간을 재보며 이겨냈다.

매일 1초라도 단축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계단을 올라왔다.

 

초반에는 5분 가까이 걸리던 것이

 

점점 줄어들어서 3분대 초반으로 짧아졌다.

 

 

사실 이렇게 운동하려고 마음먹으면 3분만 시간을 내도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점점 횟수가 거듭될수록

시간이 단축되는 것 뿐만아니라

16층까지 걸어 올라오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숨이 차지않을 정도로 나의 체력이 향상되고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별거 아닐 수도 있는 것을 하루하루 카운트를 해가며 매일 클리어 하다보니

신기하리만치

생활에 활력이 생기고

일부러 계단오르기를 위해 쓰레기도 자주 버리며, 귀찮아서 나가기 싫어하던 습관이 고쳐졌다. 

 

저녁이면 습관적으로 마시던 맥주도 줄였고

내 몸무게도, 체지방도 조금씩 줄었다.

좀더 몸이 가벼워지면서 우울한 기분과 스트레스에 대처하는 힘도 강해졌다.

 

 

가끔은 두칸씩 올라가기도 하고

가끔은 하루에 두번 하기도 하고

매일 재미를 붙이며 그렇게 약 50일이 넘어가던 때 

몸을 움직이는 것이 마음과 정신도 맑게 해준다는 것을 깨달았고

 

운동량을 늘리기로 하고

매일 1시간 빠르게 걷기를 추가했다.

 

퇴근해서 집에 오면

저녁을 먹고 간단하게 정리를 한 후 선선해지는 8시 반쯤 (여름이었으니까) 모자를 쓰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집을 나섰다.

 

동네걷기를 하루이틀 하다보니 나만의 코스가 생겨서 

1시간을 땀나게 걷고나서 집에 들어올때는 계단으로 걸어올라오는 코스였는데

 

그렇게 1시간을 걸으며 땀을 쫙 빼고

집에 들어와서 시원한 아이스크림 한개 먹고 개운하게 샤워를 하는 것이

그렇게 기분이 좋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1시간 빠르게 걷기+계단오르기를 100일이상 하면서

나는 운동을 습관화 하는 것을 성공했다.

나에게 맞는 운동을 찾았고, 나는 좀더 건강해지고 있었다.

 

 

 

이야기가 돌고돌았지만..

이것이 바로 

예능프로그램의 나비효과가 아닌가..

 

 

 

 

김종국씨~!!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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