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각하기/기억조각

햇빛 네모

쥴리T 2020. 12. 30.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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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향 집은 한겨울 점심때 쯤이면

거실에 따뜻한 햇빛이 들어와 있다.


이런 햇빛 네모 안에 들어가면

보일러를 켠 듯 바닥이 따뜻하다.


이런 장면을 볼 때마다 항상

선명하게 떠오르는 기억 조각 하나..








내가 국.민.학.교. 2학년 때..


지금으로 부터 거의 40년 전..

9살이었을 때였다.



그때만 해도 오전.오후반이 있던 시절이었는데

오전반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면


거실에 딱 따뜻한 햇빛 네모가 만들어져 있었다.



그날도 아주 추웠던 어느 겨울날이었던 거 같다. 


또래보다도 많이 작았던 내가

내 등짝보다도 더 큰 가방을 매고 쭐래 쭐래 학교에서 돌아오면


엄마는 항상 추운 날씨에 차가워진 내 작은 손을 붙들고

아구 춥제~~ 하시면서

따뜻한 햇빛 네모 속으로 데려가서

따뜻해진 거실 바닥에 내 손을 때고 

조물조물 차가운 작은 손을 녹여주셨다.


학교 끝나고 집에 가면 늘 집에서 엄마가 날 맞아주셨지만

특히 추운 날에 엄마가 그렇게 해주는 게 

참 따뜻하고 좋았다.



지금의 나보다 훨씬 젊었던 엄마의 손은

어떤 난로보다도 따뜻하고 좋았다.






어린 시절 엄마에 대한 이런 따뜻한 기억이 있는 난...


정작 내 아들에게는 그렇게 해주지 못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늘 혼자 학교에 가고 집에 오고

알람에 맞춰 혼자 챙겨 학원에 가고, 집에 오고...


하교하는 어린 아들을 집에서 따뜻하게 맞아준 적이 없다.




어린 나이에

빈집에 혼자 문 열고 들어가는

그 스산하고 헛헛한 기분을 느껴본 적 없이 자란 나는


아들의 그런 마음을 온전히 이해할 순 없지만


아들이 가끔 어릴 때 이랬었어... 하며

얘기해줄 때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뻥 뚫린 거 같은 미안한  마음에 

그런 얘기를 들은 후 며칠 동안은 참 힘들어 하기도 한다.




요즘은 코로나 시국이라 아들과 붙어있는 시간이 많다.


나도 재택근무를 자주 하고

아들도 온라인 수업을 하고..




아들은 이제 엄마의 손길이 별로 필요 없을 정도로 많이 자랐지만


어릴 때 함께하지 못했던 시간을 보상해준다는 생각으로 

재택근무 중에도 일하며 밥 챙겨주고 간식 챙겨주고 이것저것 하고는 있지만

참 쉽지가 않다..


그 시절 젊었던 엄마의 손보다 

한참은 더 늙은 내 손을

햇빛 네모에 올려놓고 보면서 


아들이 어릴 때 엄마로서 못해줘서 미안했던 마음을 떠올리는 중이다.



안 그래도 코로나로 힘들고 어려운 시기인데

어린 나이에 겪지 않았으면 좋았을 

힘든 실패를 겪은 아들이

잘 이겨내고

다시 서서히 힘을 낼 수 있도록

곁에서 응원해주고 있다.


이런 내 마음과는 다르게 

실상은

자주 목소리가 커지고,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내기도 하지만 말이다...





인생은 참 길고 

이 나이 먹은 나도 인생의 정답을 모르겠는데


무엇을 위해 달려가라고 

무엇을 위해 걸어가라고

무엇을 위해 노력하라고 해야 하는 지

어떻게 설득하고 도와줘야 할지 

정말 잘 모르겠다.



나는

그때그때 나에게 닥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가며 살아온 거 같은데..


내가 자라왔던 시절보다

요즘 아이들이 훨씬 더 똑똑하고 아는 것들이 많아서 더 많은 고민을 하는 거 같다.


어쩌면

당장 하기 싫고 귀찮은 것들을 하지 않을 핑계를 찾는 것일지도 모른다.



결국은 

스스로 찾고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한 발 한 발 내딛는 것이 정답인데


부모로서 어떻게 어디까지 도와주고, 어떤 것을 알려줘야 하는지

 


참 고민이 깊어지는 나날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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